* 퍼 온 곳 : ‘우리말글 바로 쓰기, 그 환경과 방법’ - 한겨레말글연구소

이 글은 2005년 7월 포스코 교육재단에서 발행하는 같은 이름의 간행물에 쓴 것입니다.
글을 ‘쉽고 바르게 쓰자’는 취지지만 그 주변 이야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참에 같은 주제로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그런 쪽으로 연구를 해 보자는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본보기가 될 만한 글이나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최인호 올림



우리말글 바로 쓰기, 그 환경과 방법

가. 바른말글 쓰기란?

‘우리말글을 바로 쓴다’(=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말’이란 배달말·한국어·조선말로 일컫기도 하는데, 우리 겨레 이름이 ‘배달겨레’란다면 ‘배달말’이 걸맞을 터이고, 글자 이름으로는 ‘한글’이 되겠지요. 이를 편의상 ‘우리 말글’이라 하는데, 거의 고유명사가 된 듯합니다.

‘바로 쓰기’는 ‘알아보기(알아듣기) 쉽게, 조리와 어법에 맞게’ 쓰는 것을 뜻합니다. 달리는 ‘우리말글 제대로 쓰기’도 괜찮은 표현인 듯합니다.

말을 하는 데서는 태도, 정확한 발음, 갖춘 말차례, 적절한 표현, 낱말 가려쓰기, 분명한 맺고 끊음이 주된 요소들입니다. 말하는 이의 표정, 상대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는 자세도 아울러야 할 터이고, 좀더 가면 말하는 자신뿐만 아니라 말을 듣는 상대나 제3자를 적절히 대우하는 법을 깨치면 보통 우리는 말을 다 배웠다고 합니다.

글은 어떻습니까. 그 태도는 글투로 나타나며,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 걸맞은 낱말, 분명한 맺고 끊음과 호흡에 맞는 문장 길이, 대우법을 두루 갖춰야겠지요. 다만 ‘정확한 발음’이 ‘정확한 맞춤법’(어법)으로, 말할 때 생략하던 임자말이나 부림말을 갖춰야 한다는 점, 말할 때보다 다듬어 쓸 여유가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논리적 글쓰기’란 말이 있지만, 조리나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건 말·글에 두루 적용될 터입니다.

말글을 대할 때는 또한 듣고 읽는 자세가 말하고 글 쓰는 자세 못잖게 중요합니다. 제대로 듣고 읽지 않고서는 제대로 말하고 쓰기가 어려운 까닭입니다. 그러니 쓰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듣고 읽는 일이 중요한데, 대체로 앎 곧 지식·견문은 ‘듣고 보고 읽는 데’서 쌓일 터입니다. 물론, 가르치는 데서는 주로 ‘말’과 ‘글’이 연장이 되겠지요. 이들을 아우르는 뒤쪽에 ‘생각’이 있을 터입니다.

수학·과학·철학을 가리지 않고 글로 나타내지 못할 게 없거니와 글로 나타내지 못하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라고 하면 심한 말이겠습니까? 말하기와 글쓰기, 듣기와 읽기는 이처럼 학문과 직결되어 있으니 이를 바르게 쓴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바르게 쓴다는 말과 늘 붙어 다녀야 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쉽게 쓰기, 쉽고 바르게 쓰기’라는 말인데, 어렵게 말하고 쓰면 전달이 잘 안 될 건 자명한 일입니다. 전달이 안 되는 말글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로써 ‘쉽고 바른 말글 쓰기’란 말이 나옵니다.

  얼마 전에 나왔던 2008 학년도 대학별 논술시험, 곧 ‘통합형 논술고사’ 얘기는 ‘쉽고 바른 말글쓰기’에서 괜찮은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 위주 아닌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논술시험을 영어나 한자 따위로 묻고 대답하게 하거나 바탕글을 주어 문제를 내고 쓰게 해서는 그 취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통합형 논술이란 수학이나 과학, 문학을 가리지 않고 글로써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최대한 내보이는 데 있을 터입니다. 논술 글쓰기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로 가는 괜찮은 틀로서 오래 시행하다 보면 우리 국민의 말글 수준이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모든 과목에 걸쳐 글쓰기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터이기 때문입니다.  

나.말글환경

  잠깐 우리 말글 환경을 돌아봅시다. 우리 말글을 제대로 쓰게 하는 데 도움을 준 사건이 1933에 조선어학회에서 낸 ‘한글맞춤법 통일안’(맞춤법, 표준어사정, 외래어표기법, 한글로마자표기법 포함)과 57년에 완간된 한글학회(조선어학회)의 <큰사전>입니다. 이로써 표준말이 정해지고 글자를 적는 규범이 생겨 오늘에 이르렀으며, 이 <큰사전>은 처음으로 틀을 갖춘 국어사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의 ‘표준화’ 얘기가 나옵니다. ‘표준말’이 있어야 맞춤법이 나오고 이로써 전체 말글의 얼개를 엮을 수 있으니까요. 이는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면서도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습니다. ‘표준·통일’은 좋으나 달리 보전해야 할 말글의 특징들이 사라지게 하는 폐단이 그것입니다. 사투리, 옛말 등 말의 다양성을 돌보지 않는 위험 탓입니다. 제 고장 밖에서 제 고장 사투리를 듣는 반가움을 맛볼 일이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말글과 관련해서 새롭게 등장한 괴물이 ‘세계화, 국제화’입니다. 이는 우리 말글살이의 환경을 크게 헝클어뜨린 장본입니다. 돈과 무역에서 국경이 엷어지면서 정신문화 쪽까지 허무는 괴물인데, 말글에서 국제화·세계화는 ‘영어화’와 상통할 정도로 미국·영어 일색인 풍조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풍조에 쏟는 시간과 돈의 절반만 덜어 아랍·러시아·인도 등 다른 외국어 쪽으로 힘을 쏟아야 마땅합니다. 광풍이라 일컫는 지나친 영어 교육은 나라와 겨레를 허무는 쪽으로 작용할 터이므로, 영어 교육의 ‘적정함’에 대한 연구와 그 폐해를 막아내는 장치가 시급한 지경입니다.

  말글 환경을 이루는 주체가 집안, 학교, 사회입니다. 신문·방송을 비롯한 각종 매체들도 무시 못할 요소들이지요.

  주변을 살펴보면, 집안 곧 밥상머리 가르침이 되우 허술해진 것을 봅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 탓입니다. 밥상머리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말버릇을 잡아주고 적절한 말을 가려 쓰게 하는 데 직접적인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제 학교가 상대적으로 썩 많은 짐을 떠안은 실정인데, 그만큼 안정된 자세로 천박한 사회풍조를 가다듬고 녹여내어 학습에 임해야 할 몫이 많아진 셈입니다. 당연히 사회는 사회대로, 매체는 매체대로 말글 환경을 어지럽히는 현실을 반성하는 자세를 아울러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당대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늘 새로운 것인 까닭에 ‘위기’를 강조합니다. 말글에서 교육이 말글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경우가 앞서 말한 ‘표준’입니다. 일종의 ‘국제표준’이 될 터인데, 멀리는 삼국시대 신라 쪽의 당나라식 문물 표준화,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 오랜 세월 땅이름, 각종 제도, 철학의 중국화와 한자화, 20세기 들어서는 일본화 등으로 얼마나 많은 토박이 말글과 문물을 죽였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의 미국화와 영어화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므로 그 책임은 당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 무슨 수로?

  다른 겨레나 나라 사람들과 사귀는 일이 잦아지고 중요해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자면 말글이 통해야 하고, 그런 필요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사생결단하며 온국민과 학생들이 미칠 일이겠습니까.

  저런 헝클어진 말글 환경을 추스르고 맑게 하는 운동이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사회·나라 차원에서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곧 외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되 그것이 우리 말글을 허무는 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며, 크게 보면 이런 노력이 곧 우리 말글을 바로 쓰게 하는 지름길이 될 터입니다.

우리 말글은 적절한 토씨와 씨끝(어미)을 붙여 엮어나가는 말(교착어)이어서 철저한 맞춤법, 문법교육을 해야 바른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귀찮다거나 어렵고 재미가 없다거나, 입학시험 따위에서 별로 문제를 내지 않으니까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토씨와 씨끝을 제대로 부려쓰고 활용하면 쉽고 조리 잡힌 글이 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른 말글 쓰기는 여기서 시작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입니다. 따라서 바른말글 쓰기를 효율적으로 지도하는 방식은 바로 말본 교육을 철저히 하는 데 있다 할 것입니다.

적어도 영어 문법을 국어문법에 적용하는 웃지 못할 얘기가 나와서는 안 될 터입니다. 모든 교과목에서 함부로 외국어를 쓰거나 외래어를 남발하는 일도 줄여야 할 것입니다. 번역문투를 우리 말글에 그대로 가져다 쓰는 일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직업정보 회사에서 조사한바, 기업체 신입사원들이 국어실력이 부족해 문제라는 점을 첫손으로 꼽는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는 바로 입시공부 위주로 국어를 가르치고 배운 탓입니다. 국어 공부는 고등학교 과정에서 고급국어를 부려쓰게 하는 교육으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은 ‘학문’을 가르칠 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통합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의 몫이 매우 큽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우리 말글로 제대로 풀이해 낼 수 있는 ‘수학·과학’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각 과목 교사들의 말글에 대한 소양 역시 각별해야겠습니다. 말글이 없어진 숱한 족속들의 얘기도 역사에서 거듭 가르쳐야 할 터이며, 오래지 않은 우리 피눈물 나는 역사도 말글과 함께 되새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숙제를 받아 평가하고 그 잘잘못을 일일이 과제물에 표시하여 돌려주면 모든 분야의 글쓰기에 큰 가르침이 될 터입니다. 아울러 학생들을 가르치기 전에 어른 나름의 반성과 공부도 중요할 터입니다.

개혁, 민주화, 세계화 들로 피로가 쌓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과 겨레를 챙겨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반만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 한가운데 우리말글이 고갱이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끝으로 여러 선생님들께서 외국어나 외래어를 써야 전달이 잘되고 쉬운글이 되는 현실이 오지 않도록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요즘 그렇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Posted by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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