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 온 곳 : http://inkeehong.com/articles/14_misc/1466_iaeo_i_a.html
* 굵은 글자나 기울인 글자는 옮겨온 제가 그리한 것입니다.
우리말답게 우리말 쓰기
절친한 편집자가 책을 보내왔다. [망각의 정원]이라는 책이었다. 미하엘 엔데의 유고작이라는데 곽선영이라는 사람의 파스텔 삽화가 보기 좋다.
알라딘에서 이 책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오른쪽에 뜨는 관련 서적 정보에 눈이 갔다. 미하엘 엔데가 쓴 또 다른 책 [자유의 감옥]이었다. 작은 거북이를 손바닥에 올린 채 바라보는 작가의 옆모습을 흑백사진으로 찍어 표지로 삼았다.
갑자기 두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제목에 소유격 조사인 ‘-의’가 붙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망각의 정원, 자유의 감옥. 망각이 정원을 소유할 리가 없건만, 자유가 감옥을 설립했을 리가 없건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망각의 정원이라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원이라거나 그 정원에 가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풀어서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자유의 감옥도 마찬가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구속을 상징하겠거니 하거나 자유롭기에 오히려 방향감각을 잃은 채 부유하는 현대를 꼬집는 것이 아닐까 지레짐작까지 해본다. 하지만 이런 짐작이 모두 부질없는 실수일지도.
이렇게 어색하고 부정확한 소유격 조사 ‘-의’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을까? ‘-적’이라는 일본식 표현을 송두리채 들어내고 학술’적’인 글을 쓸 수는 없을까? ‘그’라는 정관사를 불러내지 않고 한정’적’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지시할 수 있을까?
글 쓰는 법, 글 제대로 쓰는 법, 글 잘 쓰는 법을 알려준다는 책을 여러 권 탐독해왔다. 그런 책들 어디에도 거기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다. 우선 거개가 영어 서적이었고 우리말로 된 책이라도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들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사항들을 풀어 들려주는데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정작 중요한 문제인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는 법을 제대로 알고 또 실행하다보면 위에서 제기한 저 따위 하찮은 문제들은 금새 해결할 수 있게 될런지도 모르지.
한편으로 신기한 점은 (동시에 날 정말 우울하게 만드는 점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쓰는 글이 훨씬 깔끔하고 간결하며 어법에 더욱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게 눈을 부릅뜨고 써놓은 글을 퇴고하는 일도 아니요 며칠 밤낮을 끙끙대며 고민하는 일도 아니요 출판사 편집자 출신 친구를 찾아 미안해하며 교정을 부탁할 일도 아니다. 그냥 온라인 상에서 무작정 갈겨대면서도 몇 마디마다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정도면, 그 정도만 관심을 가지면 글이 훨씬 더 좋아진다.
그렇다면 언론매체에 글을 쓰는 기자들은 어떠한가? 나보다 훨씬 더 자주 글을 쓰는 사람들이니까 기본 자질과 훈련은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네이버 뉴스 등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숱한 기사들 중에서 상당수가 읽기에 허접하고 괴로운 우리말을 쓴다. 기자들이 원래 모든 전문직종에 능통할 수 없기에 인용하는 누군가의 말이나 사실을 잘못 전달하거나 아예 까놓고 왜곡하는 경우는 흔하다. 기자들이 중요하다고 믿거나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믿기를 바라는 주제가 쓰레기같은 경우도 잦다. 그런 점들을 눈치채려면 아무래도 그냥 한국인이라는 자격요건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말을 우리말처럼 제대로 쓰는가를 판별해내는 데 특별한 고등교육이나 엄청난 전문지식이 왜 필요한가?
사실 글 잘 쓰는 법을 강의하는 책들을 섭렵할 필요도 없다. 제대로 된 책들이라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몇 가지 사항들을 가끔씩 되짚어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글을 제대로 어법에 맞게 쓰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내가 현재 어림짐작으로 어느 정도 그렇게 완벽한 수준에 근접한지를 자가진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이들이 늘 강조하는 몇 가지 사항들은 바로 그런 자가진단을 돕는 아주 기본적인 방향타인 셈이다. 이는 마치 Voca 22,000이라는 책에 영단어 2만 2천 개가 들어있지 않지만 거기에 담긴 단어들을 대충 다 숙지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 수준에 이른 사람임을 암시하는 바와 비슷하다.
(1) 짧게 쓴다.
생각이 복잡한 사람은 문장과 글을 짧게 쓰지 못한다.
(2) 또렷하게 쓴다.
생각이 복잡한 사람은 문장과 글을 짭고 또렷하게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쓰지 말라 이거다.
이 정도가 큰 대목들이다.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다. 좀 더 피부에 와닿는 진단 방법을 알아놓는 것이 편리하다.
(가) 주술 관계가 명확한지 살핀다.
신문기사 끝부분에 자주 등장하는 실수 또는 술수인데, 교묘하게 마치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경우가 잦다.
(나) 어정쩡한 수동태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직도 ‘… 되어진다’라는 말을 쓰고 적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일본 흉내를 내어 자막을 남용하는데 “그에게 던져진 꽃”이라는 식으로 어색한 수동태 문장을 자주 쓴다.
(다) 어려운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를 남발하지 않는다.
감사원 홈페이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가 평가인프라 구축 지원과 감사원의 성과평가감사 및 연구기능을 지원할 평가. 연구원을 감사원 소속하에 설립…” 이런 문장을 두 번 또는 세 번 다시 읽고 또 그래도 이해하지 못할 이들이 온 국민의 99퍼센트라면 심각한 일 아닐까? 전문용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이해하기 쉽게 다시 쓸 수는 있을텐데.
(라) 두 세 줄이 넘어가는 문장은 웬만하면 둘로 쪼갠다.
더 자세히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문장이 길어진다 싶으면 둘 이상으로 나눌 궁리를 하라. 가끔 정말 문장이 길어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마) 남들이 쓴다고 그냥 답습해서 틀리거나 옳지 않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부적절한’이라는 표현이 정치인과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는 뭐가 언제부터? 클린튼 섹스 스캔들 이후이지.) 뭐가 부적절한가? 누군가 말했듯이, 뭔가 캥기는 놈들이 에둘러 말하는 법. 그런 표현을 고스란히 흉내낼 필요가 어디 있는가? 검찰이 돈을 받았지만 댓가성은 없어서 잡아가지 않는데 이를 두고 모 검사가 부적절하게 처신했다고 하는 검찰 수뇌부 어투를 우리가 흉내낼 게 무엇인가?
그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김윤식 교수가 처음 사용해서 유행했으리라고 추측하는 “…에 다름 아니다”는 표현은 90년대를 거쳐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주 보인다. “…와 다르지 않다”거나 “…와 다를 바 없다”는 멀쩡한 표현이 있는데 툭하면 “…에 다름 아니”라고 적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잘못된 어법이나 어문임에도 지식인이나 기자나 정치인이 사용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 쓰는 일은 정말 사라져야 한다.
(바) 우리말은 띄어쓰기보다 맞춤법이 중요하다.
띄어쓰기 제대로 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웬만하면 그냥 모두 띄어쓰는 식으로 때운다. 하지만 맞춤법은 (5년에서 10년마다 바뀌지만===>틀린 부분입니다. 아래 댓글을 보세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맞춤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쓴 글은 쉽게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서, 이 사이트 방명록에 홍인기씨발새끼라는 사람이 쓴 욕을 보았는가? 맞춤법이 엉망이다. 그런 욕은 들어도 콧방귀!
(사) 외국어를 외래어처럼 사용하지 말라.
거기에 대해서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관한 서평을 보면 될 것이고…
사실 이 정도만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면 평소 자신이 쓰는 글보다 훨씬 매끄럽고 깔끔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자신만이 경험으로 체득한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곁들여 글쓰기에 활용하면 금상첨화. 나는 특히 번역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평소에 영어로 된 학술논문이나 서적을 늘 읽어야 하는 처지이므로 내가 쓰는 글이 어느새 영어투로 바뀌지 않도록 조심한다. 조심한다고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
출판사 편집인들이 비치해놓고 늘 들여다보는 여러가지 자료집이나 사전이나 어법규정집 등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책이 나오기에 (가끔 그걸 제대로 지키지 않는 출판사가 있지만) 그나마 우리말과 글이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개인이 쓰고 말하는 경우에도 쉽게 따르기 지킬 사항들이 있다. 약간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
문체 또는 소위 스타일이란 것은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하더라).
(2005년 08월 25일)